와일드 터키 101은 버번 입문용으로 워낙 유명한데, 같은 증류소에서 나오는 레어 브리드(Rare Breed)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전에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을 리뷰하면서 와일드 터키 증류소 이야기를 꽤 했었는데, 레어 브리드는 그 증류소가 가진 역량을 가장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배럴 프루프, 논칠필터드. 가감 없이 통째로 담아낸 버번.
레어 브리드는 어떤 위스키인가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는 6년, 8년, 12년산 버번을 블렌딩한 뒤 물을 타지 않고 캐스크에서 나온 그대로의 도수로 병입하는 배럴 프루프(Barrel Proof) 제품이다. 현재 내가 마시고 있는 배치는 116.8 프루프, 그러니까 58.4% ABV.
보통 캐스크 스트렝스라고 하면 싱글배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레어 브리드는 여러 숙성 연수의 원액을 섞은 블렌디드 배럴 프루프라는 점이 독특하다. 마스터 디스틸러 에디 러셀이 각기 다른 숙성 연수의 배럴을 맛보면서 그해의 레어 브리드 프로파일을 결정한다고. 6년산의 젊은 활력, 8년산의 균형, 12년산의 깊이를 합쳐서 하나의 일관된 맛을 만들어내는 게 이 위스키의 핵심이다.
와일드 터키 특유의 낮은 배럴 엔트리 프루프(115 프루프, 57.5%)가 여기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다른 증류소들이 125 프루프로 배럴에 넣는 것에 비해 10 프루프나 낮으니, 숙성 중에 오크에서 풍미를 더 많이 끌어낸다. 그 결과가 배럴 프루프 그대로 병에 담기는 거라 — 결국 레어 브리드 한 병에는 와일드 터키의 제조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셈이다.

와일드 터키 대표 라인업
와일드 터키 증류소의 라인업은 크게 와일드 터키 본 브랜드와 프리미엄 라인인 러셀 리저브로 나뉜다.
와일드 터키 101 — 50.5%의 상징적인 도수. 버번의 기본기를 배우기에 이만한 병이 없다. 스파이시하면서도 달콤하고, 니트로도 칵테일로도 훌륭하다.
와일드 터키 레어 브리드 — 오늘의 주인공. 배럴 프루프 58.4%로 와일드 터키의 풍미를 가장 진하게 경험할 수 있는 병.
러셀 리저브 10년 — 러셀 리저브 라인의 입문작. 45%로 부드럽지만 와일드 터키다운 스파이시함이 살아있다.
러셀 리저브 싱글배럴 — 에디 러셀이 직접 고른 배럴 하나에서만 뽑은 55% 논칠필터드 싱글배럴. 배럴마다 미묘하게 다른 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
러셀 리저브 13년 — 한정판. 13년 숙성에 배럴 프루프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레어 브리드 테이스팅 노트
116.8 프루프. 도수만 보면 좀 겁이 나는데, 실제로 마셔보면 도수가 무색할 정도로 잘 정돈된 맛이다.
향 (Nose)
글라스에 따르자마자 진한 바닐라와 캐러멜이 확 밀려온다. 58.4%치고 알코올 자극이 생각보다 적은 게 놀랍다. 좀 더 기다리면 꿀의 풍부한 달콤함이 올라오고, 그 사이로 아몬드의 고소한 뉘앙스와 대추야자(데이츠)의 진득한 과일향이 섞여든다. 은은한 꽃향기가 중간층에 깔리는 게 의외인데, 버번에서 플로럴 노트를 이렇게 뚜렷하게 잡은 건 처음이다. 그 밑으로 후추의 스파이시한 자극과 차드 오크의 그을린 향이 층층이 받쳐주고 있다. 코를 대고 한참 맡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코. 여러 숙성 연수의 원액이 섞여 있어서인지 향의 레이어가 꽤 복잡하다.
맛 (Palate)
첫 모금에서 따뜻한 곡물의 고소함이 혀를 감싸면서, 거의 동시에 향신료의 스파이시함이 치고 올라온다. 이 따뜻함과 매콤함의 줄다리기가 레어 브리드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옥수수와 호밀에서 오는 곡물 특유의 묵직한 단맛 위에 시나몬과 블랙 페퍼가 얹히는 구조. 입 안에 머금고 있으면 스모키한 뉘앙스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차드 오크의 그을린 풍미와 겹쳐지고, 삼키기 직전에 대추야자의 진한 과일 단맛이 확 퍼진다.
배럴 프루프답게 바디감이 꽤 묵직하다. 논칠필터드라서 텍스처도 오일리하고 입 안을 꽉 채우는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의외로 거칠지 않다. 지미 러셀이 고집해온 낮은 배럴 엔트리 프루프가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 것 같다 — 도수는 높은데 정제된 느낌이랄까.
물을 몇 방울 넣으면 숨어있던 꿀과 아몬드의 고소한 달콤함이 전면에 나서면서, 스파이시함은 한 발 물러난다. 니트와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니까 두 가지 다 해보는 걸 추천한다. 캐스크 스트렝스를 좋아한다면 아벨라워 아부나흐처럼 셰리 캐스크 계열의 캐스크 스트렝스와 비교해서 마셔보는 것도 재밌다. 같은 고도수인데 풍미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니까.
피니시 (Finish)
피니시가 상당히 길다. 삼키고 나면 따뜻한 온기가 가슴 쪽까지 천천히 퍼지면서, 풍부한 스파이스의 여운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후추와 시나몬이 번갈아가며 되살아나고, 그 사이로 곡물의 고소한 잔향이 깔린다. 마지막에는 블랙 페퍼의 드라이한 마무리가 깔끔하게 정리해주는데, 입 안에 남는 오크의 탄닌감도 적당해서 한 모금 마시고 여운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모금으로 손이 간다. 긴 여운 — 이게 레어 브리드의 피니시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표현이다.
마치며
솔직히 레어 브리드는 와일드 터키 라인업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은 병이 아닌가 싶다. 배럴 프루프에 논칠필터드, 여러 숙성 연수의 블렌딩까지 — 이 스펙에 이 가격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잭 다니엘 싱글배럴이 차콜 멜로잉으로 부드러운 텍스처를 만들어내는 쪽이라면, 레어 브리드는 거르지도 물 타지도 않은 날것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음용 방식은 니트를 기본으로, 물 몇 방울로 향을 열어보는 걸 추천한다. 58.4%라서 하이볼로 만들어도 도수가 충분히 받쳐주긴 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의 버번을 탄산수에 희석하는 건 좀 아깝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버번이 처음이라면 와일드 터키 101로 시작하고, 그 맛이 마음에 들었다면 레어 브리드로 한 단계 올려보는 루트를 권한다. 같은 증류소의 DNA가 도수와 함께 증폭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