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술이다. 솔직히 꽤 맛있다. 다크 초콜릿, 흑설탕, 체리 - 셰리 피니시가 만들어내는 풍미의 스펙트럼이 넓고, 46% 논칠필터링이라 질감도 좋다. 그런데 한 가지, 황 노트. 이게 계속 신경 쓰인다.
로얄 브라클라 증류소 소개
로얄 브라클라(Royal Brackla)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네언(Nairn) 근처에 위치한 증류소다. 1812년 윌리엄 프레이저 대위(Captain William Fraser)가 설립했고, 1833년 윌리엄 4세로부터 스코틀랜드 위스키 최초의 로얄 워런트(Royal Warrant)를 받았다. “왕의 위스키(The King’s Own Whisky)”라는 별명이 여기서 나왔다.
화려한 타이틀과 달리 오랫동안 블렌딩 원액 공급용으로 운영됐고, 현재는 존 듀어 앤 선즈(John Dewar & Sons, 바카디 계열) 소유다. 듀어스 블렌디드 스카치의 원액으로 쓰이다가, 2019년 싱글몰트 라인업을 46% 논칠필터링으로 리뉴얼하면서 본격적으로 싱글몰트 시장에 나섰다.
하이랜드 동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과일 풍미가 풍부하고 몰티한 캐릭터의 위스키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로얄 브라클라 12년은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한 뒤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를 거친다. “숙성”이 아니라 “피니시”라는 점이 포인트로, 몰티하고 과일 풍미 풍부한 원액 위에 셰리의 건과일과 스파이스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46%, 논칠필터링, 무색소 병입.
로얄 브라클라 대표 라인업
2019년 리뉴얼 이후의 코어 라인업은 간결하다.
- 12년 - 올로로소 셰리 피니시. 오늘의 주인공
- 18년 - 팔로 코르타도 셰리 피니시. 좀 더 드라이하고 복합적
- 21년 - 올로로소, 팔로 코르타도, PX 셰리를 모두 활용한 최상위 라인
로얄 브라클라 12년 테이스팅 노트

향 (Nose)
셰리 피니시의 향이 먼저 올라오는데, 건포도, 자두 같은 건과일 계열이다. 그 아래에서 몰티한 곡물 향이 받쳐주고, 오크의 무게감도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황 노트가 슬쩍 얼굴을 비친다. 성냥 머리를 스친 것 같은, 미네랄한 뉘앙스. 셰리 캐스크 위스키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그 녀석인데, 글렌파클라스에서 느껴지는 황 노트와 비슷한 결이다.
맛 (Palate)
입에 넣으면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흑설탕의 묵직한 단맛이 바로 이어지면서, 체리의 새콤달콤한 과일 느낌이 중간에 얼굴을 내민다. 셰리 피니시가 만들어내는 풍미의 폭은 확실히 넓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 훌륭한 술인데, 황 노트가 맛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무나 성냥이라고까지 하기엔 과한 표현이지만, 뭔가 미네랄한 텍스처가 혀 위에 살짝 걸린다. 46%라서 바디감은 좋고 알코올 자극도 적절하다.
피니시 (Finish)
셰리의 건과일 단맛이 여운으로 남고, 향신료 - 생강, 넛맥 쪽 - 가 뒤에서 따뜻하게 잡아준다. 피니시 길이는 미디엄. 마지막까지 황 노트의 잔향이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어서, 좋게 말하면 복합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거슬린다.
로얄 브라클라 12년에 어울리는 안주
- 다크 초콜릿 - 카카오 함량 높은 초콜릿이 이 위스키의 다크 초콜릿 노트와 직접 연결된다. 흑설탕의 묵직한 단맛과도 잘 어울린다
- 견과류 (아몬드, 호두) - 몰티한 곡물 캐릭터와 셰리의 건과일 풍미가 견과류의 고소함과 잘 맞는다
마치며
로얄 브라클라 12년은 분명 맛있는 술이다. 셰리 피니시의 풍미가 풍성하고, 46% 논칠필터링 덕에 질감도 탄탄하다. 하지만 황 노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봐야 할 병이기도 하다. 황 노트가 “복합성”으로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가격 대비 훌륭한 선택이고, “거슬림”으로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에서 황 노트 없는 깔끔한 스타일을 원한다면 벤리악 12년이나 글렌드로낙 12년을 먼저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