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위스키만 마시다가 처음 일본 위스키를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이게 일본에서 나온 거라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는데, 그 첫 경험이 닛카 타케츠루 퓨어몰트였다. 스카치와는 분명히 다른데 어디서 뿌리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 그러면서도 일본 특유의 깔끔하고 정제된 감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위스키였다. 이 한 병에 일본 위스키의 역사가 압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닛카 증류소 소개
닛카(Nikka) 이야기를 하려면 한 사람에서 시작해야 한다.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1918년, 스물네 살의 청년 타케츠루는 위스키 양조 기술을 배우러 단신으로 스코틀랜드에 건너갔다.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면서 롱몬(Longmorn), 하젤번(Hazelburn) 등의 증류소에서 실습을 했는데, 이 시기에 스코틀랜드 여성 제시 로버타 카우언(Jessie Roberta Cowan, 일본명 리타)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일본인 남성과 스코틀랜드 여성의 국제결혼이라니, 1920년대에 이건 정말 대단한 결단이었을 거다. 이 둘의 이야기는 2014년 NHK 아침 드라마 ‘맛상(マッサン)’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 돌아온 타케츠루는 처음에 산토리의 토리이 신지로와 함께 야마자키(山崎) 증류소를 세운다. 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철학 차이로 산토리를 떠나, 1934년에 홋카이도 요이치(余市)에 자신의 증류소를 설립한다. 이것이 닛카의 시작이다. 요이치를 선택한 이유가 재미있는데,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기후와 환경을 가진 곳이라서였다고. 실제로 요이치는 바다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아일라의 해안가 증류소들과 비슷한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이후 1969년에는 미야기현 센다이에 미야기쿄(宮城峡) 증류소를 추가로 설립했다. 요이치가 묵직하고 피티한 스타일이라면, 미야기쿄는 가볍고 우아한 스타일인데, 이 두 증류소의 원액을 블렌딩해서 만든 것이 바로 타케츠루 퓨어몰트다.
일본 위스키의 특징
일본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거기에 일본 특유의 정밀함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더했다. 스카치가 지역과 증류소의 개성을 강조하는 편이라면, 일본 위스키는 조화와 균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밸런스가 좋은 게 특징인데, 한 가지 요소가 튀기보다는 모든 풍미가 절제된 상태에서 어우러지는 스타일이다. 닛카의 경우 요이치에서는 피티하고 파워풀한 원액을, 미야기쿄에서는 섬세하고 프루티한 원액을 만드는데, 이 폭넓은 스펙트럼이 블렌딩에 큰 강점이 된다.
최근 몇 년간 일본 위스키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수급이 불안정해졌고, 숙성 연수 표기 제품들이 대거 단종되거나 가격이 크게 올랐다. 타케츠루도 원래 12년, 17년, 21년산이 있었는데 현재는 NAS(No Age Statement) 제품만 정규 라인업으로 남아있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타케츠루 퓨어몰트는 창업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제품이다. 닛카에서 이보다 더 상징적인 이름은 없다고 봐도 된다. “퓨어몰트”라는 표현이 좀 헷갈릴 수 있는데, 요즘 말로 하면 “블렌디드 몰트” — 여러 증류소의 몰트 위스키를 섞은 거다. 구체적으로는 홋카이도 요이치의 피티하고 묵직한 원액과, 센다이 미야기쿄의 우아하고 프루티한 원액을 블렌딩한다.
원래 타케츠루 라인에는 12년, 17년, 21년산이 있었다. 특히 17년은 국제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할 정도로 평가가 좋았는데, 글로벌 일본 위스키 붐이 터지면서 원액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2020년 사이에 숙성 연수 표기 제품들이 하나둘 단종됐고, 지금은 NAS 버전만 남아있다. 예상치 못한 인기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그래도 NAS 버전을 단순히 “열화판”으로 보기는 어렵다. 숙성 연수 표기가 사라진 대신, 블렌더들이 요이치와 미야기쿄 원액의 비율과 조합을 좀 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닛카의 블렌딩 철학 — 두 증류소의 대조적인 캐릭터를 하나로 엮어내는 — 을 가장 직접적으로 맛볼 수 있는 입문 제품이라는 점에서, 이 가격에 이 퀄리티면 여전히 할 말이 많은 위스키다.
닛카 대표 라인업
닛카의 라인업은 두 증류소의 싱글 몰트와 블렌디드 라인으로 나뉜다.

타케츠루 퓨어몰트 — 오늘의 주인공. 요이치와 미야기쿄의 몰트 원액을 블렌딩한 퓨어몰트(= 블렌디드 몰트)로, 닛카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다. 창업자의 이름을 딴 만큼 닛카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가진 라인업.
닛카 프롬 더 배럴(From The Barrel) — 위스키 매니아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제품. 51.4%의 높은 도수에 농축된 풍미가 특징이고, 세계 여러 위스키 대회에서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보기만 해도 소장 욕구가 올라오는 사각형 병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요이치 싱글 몰트 — 홋카이도 요이치 증류소 원액으로만 만든 싱글 몰트. 석탄 직화 증류(coal-fired distillation)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어서, 피트 스모크와 바다의 미네랄 느낌이 강하다. 스코틀랜드의 해안가 증류소와 비교되곤 하는데, 개성이 뚜렷한 위스키다.
미야기쿄 싱글 몰트 — 센다이 미야기쿄 증류소 원액의 싱글 몰트. 요이치와는 정반대로 가볍고 프루티하고 플로럴한 스타일. 카페 스틸(Coffey still)도 함께 운용해서 그레인 위스키도 만든다.
닛카 코피 그레인(Coffey Grain) — 카페 스틸로 증류한 그레인 위스키. 버번에 가까운 달콤하고 크리미한 맛이 나는데, 위스키 입문자나 버번 팬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닛카 코피 몰트(Coffey Malt) — 몰트 위스키를 카페 스틸로 증류한 독특한 제품. 보통 몰트 위스키는 포트 스틸로 증류하는데, 카페 스틸을 쓰면 또 다른 캐릭터가 나온다. 호기심 많은 위스키 팬이라면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닛카 타케츠루 퓨어몰트 테이스팅 노트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가 남긴 이름, 그 맛을 확인해보자.

향 (Nose)
가장 먼저 올라오는 건 상큼한 사과 향이다. 풋사과보다는 잘 익은 부사 사과에 가까운 느낌. 거기에 시트러스의 산뜻함과 꿀의 부드러운 단맛이 섞여서 첫인상이 아주 밝다. 바닐라의 크림 향도 은근히 깔려있고, 살짝 꽃향기 같은 게 코끝에 스친다. 그리고 요이치 원액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미세한 스모키함이 배경처럼 깔려있는데, 이건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맑은 향인데, 이 “깔끔함”이 일본 위스키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맛 (Palate)
첫 모금에 느껴지는 건 부드러움이다. 스무스한 질감이 입 안에 부드럽게 퍼지면서, 과수원 과일 — 사과, 배 — 의 맛이 올라온다. 토피의 달콤함이 중간에 끼어들고, 마일드한 피트 스모크가 아주 가볍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화이트 페퍼의 살짝 매콤한 스파이스가 단맛과 좋은 대비를 만들어주고, 클린한 몰트의 캐릭터가 전체를 관통한다.
타케츠루 퓨어몰트의 매력은 이 밸런스에 있다. 어느 하나가 튀지 않는다. 스모키함은 있되 가볍고, 단맛은 있되 과하지 않고, 스파이스는 있되 거슬리지 않는다. 마치 일본 정원처럼 모든 요소가 정확한 자리에 놓여있는 느낌이랄까. 이게 스코틀랜드 위스키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스카치가 개성과 캐릭터를 앞세운다면, 타케츠루는 조화와 절제를 선택한 위스키다.
피니시 (Finish)
피니시는 미디엄 정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편이다. 젠틀한 스모크가 은은하게 남으면서 과일의 달콤한 여운이 입 안에 머문다. 뒤끝에 비터 초콜릿 같은 약간의 쓴맛이 살짝 얼굴을 비추는데, 이것도 아주 절제돼 있어서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이 쓴맛이 있어서 피니시가 단조롭지 않게 마무리된다. 라가불린 같은 긴 피니시는 아니지만, 깔끔하게 끝나면서도 여운은 확실히 남기는 — 일본 위스키다운 피니시라고 할 수 있다.
마치며
닛카 타케츠루 퓨어몰트는 일본 위스키가 뭔지 궁금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병이다. 산토리 히비키가 블렌디드 위스키의 정수를 보여준다면, 타케츠루는 일본 몰트 위스키의 정수를 보여주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NAS라는 것. 과거의 타케츠루 17년이나 21년을 맛본 사람들은 현재 NAS 제품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원액 수급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NAS 제품의 완성도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보여주는 일본 위스키를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음용 방식은 니트가 기본이고, 일본식 미즈와리(물타기)도 좋다. 위스키와 물을 1:1이나 1:2 비율로 섞어 마시는 건데, 타케츠루의 섬세한 풍미가 오히려 더 잘 열리는 경우가 있다. 하이볼로도 훌륭한데, 일본에서 위스키 하이볼이 그렇게 인기 있는 이유를 바로 이해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