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에 입문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듣게 되는 브랜드가 아마 맥캘란일 거다. “싱글 몰트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 때문에 괜히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로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를 처음 마셨을 때의 감상은 “아, 이래서 다들 맥캘란 맥캘란 하는구나” 정도였다. 건과일의 풍성한 달콤함, 셰리 캐스크에서 온 깊은 맛. 한 잔으로 위스키의 매력이 뭔지 바로 이해가 되는 그런 병이었다.
맥캘란 증류소, 셰리 오크에 미친 집안
맥캘란(The Macallan)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정확히는 크레이겔라치(Craigellachie) 근처의 이스터 엘키스 에스테이트(Easter Elchies Estate)에 자리 잡고 있다. 1824년에 정식 면허를 받아 설립됐으니 올해로 2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증류소다.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라는 조지안 양식의 장원 건물이 에스테이트 중심에 있는데, 맥캘란 병에도 이 건물의 실루엣이 새겨져 있다.
맥캘란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셰리 캐스크다. 맥캘란은 스페인 헤레스(Jerez) 지역의 셰리 와인 양조장과 오래전부터 독점 계약을 맺고, 직접 오크 나무를 선별하고 캐스크를 만들어 셰리 와인을 넣어 시즈닝한 후 스코틀랜드로 가져오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캐스크 하나를 만드는 데 5년 가까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 정도의 집착은 다른 증류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8년에는 무려 1억 4천만 파운드(약 2,300억 원)를 들여 새 증류소를 완공했다. 건축사무소 로저스 스터크 하버 + 파트너스(Rogers Stirk Harbour + Partners)가 설계한 이 건물은 스페이사이드 언덕 위에 물결 모양의 지붕이 펼쳐진 형태인데, 지붕 위에 잔디가 자라서 멀리서 보면 마치 언덕의 일부처럼 보인다. 위스키 증류소라기보다 미술관 같은 느낌이고, 건축 자체가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특징
스페이사이드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많은 증류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스페이 강(River Spey) 주변에 50개가 넘는 증류소가 몰려있는데, 이 지역 위스키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아함과 과일향이다. 아일라의 강한 피트, 하이랜드의 야생적인 힘과는 대비되는 스타일이랄까.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가볍고 플로럴하거나, 셰리 캐스크의 영향이 강한 과일향 계열로 나뉘는데, 맥캘란은 후자의 대표주자다. 다만 맥캘란이 “가벼운 스페이사이드”라는 인식과는 좀 다른 게, 셰리 캐스크의 영향이 워낙 강해서 오히려 묵직하고 풍성한 맛이 난다. 같은 스페이사이드라도 글렌피딕이나 글렌리벳 같은 가벼운 스타일과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이 위스키의 탄생 배경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는 맥캘란이라는 브랜드의 명성을 만든 장본인이다. 사실 맥캘란이 지금처럼 “싱글 몰트의 롤스로이스”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셰리 캐스크에 대한 거의 광적인 집착이 있다. 다른 증류소들이 비용 문제로 중고 버번 배럴을 주로 쓸 때, 맥캘란은 처음부터 셰리 캐스크를 고집했고, “셰리 오크”라는 이름은 그 철학의 결정체인 셈.
“셰리 오크”라는 표기가 의미하는 건 명확하다. 100% 셰리 시즈닝 유러피안 오크 캐스크에서만 숙성했다는 뜻이다. 버번 캐스크의 개입이 전혀 없다. 나중에 출시된 “더블 캐스크”가 셰리와 버번 캐스크를 혼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인 거다. 캐스크 하나를 준비하는 데 드는 공정도 보통이 아닌데, 맥캘란은 스페인 북부에서 직접 오크 나무를 선별하고, 그 목재로 캐스크를 짜서, 드라이 올로로소 셰리를 넣어 최대 2년간 시즈닝한 다음에야 스코틀랜드로 보낸다.
이 과정에 드는 비용이 일반적인 버번 배럴을 사오는 것보다 약 10배 정도 된다고 한다. 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셰리 캐스크만으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고집이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를 맥캘란 라인업의 플래그십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가격이 더블 캐스크보다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고, 한 번 마셔보면 그 차이가 캐스크에서 오는 거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맥캘란 대표 라인업
맥캘란의 라인업은 크게 셰리 오크(Sherry Oak) 시리즈와 더블 캐스크(Double Cask) 시리즈로 나뉜다.

12년 셰리 오크 — 오늘의 주인공. 100% 셰리 시즈닝 오크 캐스크에서만 숙성한 맥캘란의 간판. 셰리 오크 시리즈의 입문작이면서도, 맥캘란이 추구하는 맛의 방향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병이다.
12년 더블 캐스크 — 셰리 오크 캐스크와 아메리칸 오크(버번) 캐스크에서 각각 숙성한 원액을 블렌딩한 제품. 셰리 오크 대비 좀 더 가볍고 밸런스가 좋은데, 입문자들에게 더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이라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캘란이기도 하다.
15년 더블 캐스크 — 12년 더블 캐스크의 상위 라인. 3년의 추가 숙성이 만들어내는 깊이감이 확실히 있다. 43%로 도수도 살짝 올라갔고.
18년 셰리 오크 — 맥캘란 프리미엄 라인의 핵심. 18년이라는 숙성 기간과 셰리 캐스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풍미의 깊이가 상당하다. 가격도 상당하지만, 특별한 날 한 잔 마시기에는 그 값을 충분히 한다.
레어 캐스크(Rare Cask) — 맥캘란의 마스터 위스키 메이커가 직접 선별한 희소한 캐스크들로만 구성된 제품. 매번 구성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맥캘란의 다양한 캐스크 스펙트럼을 한 병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특징.
이 외에도 25년, 30년 같은 울트라 프리미엄 라인이 있지만, 가격대가 가격대인지라 쉽게 손이 가는 영역은 아니다.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 테이스팅 노트
그럼 본격적으로 맥캘란의 정체성이 담긴 12년 셰리 오크를 마셔보자.

향 (Nose)
글라스에 따르면 건과일의 진한 향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건포도, 대추, 말린 무화과 — 셰리 캐스크가 선사하는 전형적인 달콤함이다. 그 아래로 셰리 특유의 과일 달콤함이 깔려있고, 생강의 약간 매콤한 향, 토피 애플(toffee apple)의 캐러멜화된 사과향이 섞여 들어온다. 은은한 우드 스모크도 코끝에 살짝 걸리고, 오렌지의 시트러스향이 전체를 산뜻하게 마무리해준다. 셰리 캐스크의 영향이 지배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여러 층위의 향이 교차하는 느낌이 좋다.
맛 (Palate)
입에 넣으면 풀바디하고 풍부한 맛이 확 퍼진다. 건과일의 달콤함이 혀 위를 먼저 장악하고, 그 위에 스파이스의 따끔거림이 올라탄다. 초콜릿 오렌지 — 테리스 초콜릿 오렌지를 먹을 때 나는 그 맛이 꽤 정확한 비유다. 셰리의 달콤한 영향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으면서, 워밍한 온기가 입 안을 데운다. 오키(oaky) 바닐라의 크리미한 터치도 중간에 느껴지는데, 이게 셰리의 진한 달콤함과 만나면서 상당히 좋은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40%라는 도수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 도수에서 이 정도 풍미를 뽑아내는 건 캐스크의 힘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피니시 (Finish)
미디엄-롱 정도의 피니시. 따뜻한 여운과 함께 셰리와 오크의 잔향이 꽤 오래 머문다. 젠틀한 스파이스가 뒤에서 은근하게 존재감을 유지하고, 건과일의 달콤함이 마지막까지 입 안에 남아있다. 드라마틱하게 긴 피니시는 아니지만, 편안하면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운. 다음 한 모금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종류의 피니시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마치며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는 “좋은 위스키가 어떤 건지” 감을 잡기에 딱 좋은 병이다. 셰리 캐스크의 달콤함이 위스키 입문자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오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사람에게도 맥캘란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준점 같은 존재.
한 가지 알아둘 점은,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와 “더블 캐스크”는 상당히 다른 제품이라는 거다. 이름이 비슷하다 보니 혼동하기 쉬운데, 셰리 오크가 더 진하고 달콤한 셰리 캐릭터를 보여준다면, 더블 캐스크는 좀 더 가볍고 바닐라향이 강한 스타일이다. 본인 취향에 맞는 쪽을 고르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맥캘란을 마시는 이유가 셰리 캐스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셰리 오크 쪽을 더 선호한다.
니트로 마시면 셰리 오크의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나고, 물을 몇 방울 넣으면 숨어있던 과일향이 더 열린다. 온더록으로 마시면 달콤함이 조금 억제되면서 가볍게 즐기기에도 괜찮다. 어떤 방식으로 마시든 실패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게 맥캘란 12년 셰리 오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