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결국 한 번은 부딪히는 이름이 있다. 아일라(Islay). 스코틀랜드 서쪽 끝, 인구 3천 명 남짓한 작은 섬인데, 이 섬에서 나오는 위스키들이 전 세계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피트(Peat). 아일라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그 스모키한 풍미의 정체가 바로 이 피트다.
아일라 섬, 어떤 곳인가
아일라는 스코틀랜드 서해안, 주라(Jura) 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1/3 정도. 걸프 스트림의 영향으로 위도 대비 온화한 편이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비가 거의 연중 쉬지 않는다. 이 습한 해양성 기후 덕분에 섬 전체에 피트(이탄)층이 두껍게 쌓여있고, 이 피트를 보리 건조에 사용하면서 아일라 특유의 스모키한 위스키가 탄생한다.
섬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위스키에도 해조류, 소금기, 요오드 같은 해양 캐릭터가 실리는 경우가 많다. 같은 피트 위스키라도 내륙의 피트와 아일라의 피트는 결이 다르다고 하는데, 아일라 피트에는 해초와 이끼 성분이 많이 섞여있어서 그 특유의 약품 같은, 바다 같은 뉘앙스가 생긴다.
아일라 위스키의 핵심 특징
아일라 위스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피트, 스모크, 바다다.
- 피트(Peat) — 보리를 건조할 때 피트를 태워서 연기를 쐬는데, 이 과정에서 페놀 화합물이 보리에 스며든다. 피트 레벨은 PPM(페놀 파츠 퍼 밀리언)으로 측정하는데, 증류소마다 PPM이 천차만별이다
- 스모키(Smoky) — 피트에서 오는 훈연향. 모닥불, 훈제 고기, 소독약 등 다양한 뉘앙스로 나타난다
- 해양성(Maritime) — 바닷바람, 해초, 소금기, 요오드. 아일라 위스키에 바다 냄새가 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다만 아일라 위스키가 전부 피트 폭탄인 건 아니다. 부나하벤 12년처럼 논피트(unpeated) 스타일도 있고, 브룩라디 더 클래식 라디 같은 완전 논피트 보틀도 아일라에서 나온다.
아일라 대표 증류소
아일라에는 현재 9개의 증류소가 가동 중이다. 작은 섬 하나에 이 정도 밀도로 증류소가 몰려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라프로익(Laphroaig) — 아일라의 상징 같은 존재. 약품, 요오드, 바다의 극강 피트. 호불호가 강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빠져나올 수 없는 맛이다. 영국 왕실 인증을 받은 유일한 싱글몰트이기도 하다.
라가불린(Lagavulin) — 16년이 대표 보틀. 라프로익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피트가 특징이다. 스모키하면서도 건과일의 단맛이 어우러지는 밸런스가 인상적인 증류소.
아드벡(Ardbeg) — 아일라에서도 가장 강렬한 피트를 자랑한다. 10년이 입문용으로 유명하고, 우가달(Uigeadail)이나 코리브레칸(Corryvreckan)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부나하벤(Bunnahabhain) — 아일라에서 보기 드문 논피트 스타일의 대표주자. 12년은 셰리 캐스크의 부드러운 풍미가 메인이고, 피트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일라인데 피트가 싫다면 부나하벤이 답이다.
보모어(Bowmore) — 아일라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1779년). 미디엄 피트 스타일로 라프로익과 부나하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12년이 가격 대비 괜찮은 입문용.
브룩라디(Bruichladdich) — 논피트의 더 클래식 라디, 헤비 피트의 포트 샬롯(Port Charlotte), 초극강 피트의 옥토모어(Octomore)까지 한 증류소에서 세 가지 라인을 운영한다. 옥토모어는 PPM이 200을 넘기기도 하는 괴물.
쿨일라(Caol Ila) — 아일라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증류소. 조니워커 등 블렌디드 위스키의 핵심 원액으로 쓰이는데, 싱글몰트로도 가성비가 좋다. 가볍고 깔끔한 피트가 특징.
킬호만(Kilchoman) — 2005년에 설립된 아일라 최신 증류소. 보리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 과정을 섬에서 하는 팜 디스틸러리(Farm Distillery) 컨셉이다.
아드나호(Ardnahoe) — 2019년에 문을 연 가장 새로운 증류소. 아직 숙성 중인 원액이 많아서 본격적인 평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이 밖에 최근에는 하트 브라더스처럼 독립병입자가 아일라 원액을 사서 자기들 스타일로 병입하는 경우도 있다. 증류소 이름은 안 밝히지만 아일라 특유의 피트 캐릭터는 확실히 느낄 수 있어서, 가성비 아일라를 찾는다면 이런 독립병입 보틀도 괜찮은 선택지다.
마치며
아일라 위스키는 위스키 세계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한 카테고리다. 처음엔 소독약 냄새에 놀랄 수 있지만,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다른 위스키가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입문이라면 라가불린 16년이나 보모어 12년 정도에서 시작해보는 걸 추천한다. 피트가 부담스럽다면 부나하벤 12년으로 아일라 섬의 다른 면을 먼저 경험해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