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그란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꽤 있을 거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싱글 몰트 판매 1위를 수십 년간 지켜온 브랜드다. 1840년 스페이사이드 로디스에 세워진 증류소로, 키 크고 가느다란 증류기에 정제기(purifier)를 달아서 가볍고 깨끗한 원액을 뽑아내는 게 특징이다. 스페이사이드 중에서도 특히 과일향이 화사한 쪽에 속한다.
배치 스트렝스란
글렌그란트 15년은 50% 배치 스트렝스로 병입된다. 코어 라인업인 10년이나 12년이 43~46%인 것에 비하면 확실히 높은 도수다. 논칠필터드에 자연 색상 — 원액이 가진 걸 최대한 그대로 담아낸 버전이다. 퍼스트 필 엑스 버번 캐스크만 사용했는데, 글렌그란트 특유의 가벼운 과일향 위에 버번 배럴의 바닐라와 캐러멜이 한 겹 더 얹혀 있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테이스팅 노트
향 (Nose)
잔에 따르면 가장 먼저 꽃향이 올라온다. 화사하고 향긋한 — 봄날 과수원에 서 있는 느낌이다. 바로 뒤를 사과의 상큼함이 따르고, 시트러스 계열의 산뜻함이 전체를 감싼다. 잔을 좀 더 돌리면 오렌지 껍질의 약간 쌉쌀한 뉘앙스가 깔리는데, 이게 단순한 과일향에서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포인트다. 50%라는 도수가 무색할 정도로 알코올 자극은 거의 없다.
맛 (Palate)
입에 머금으면 꿀의 달콤함이 먼저 치고 들어온다. 그 위로 몰티한 곡물감이 탄탄하게 바닥을 깔아주는데, 바닐라의 부드러운 단맛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중반을 지나면서 견과류 — 아몬드, 호두 같은 고소함이 올라오면서 맛의 층이 한 번 더 바뀐다. 배치 스트렝스답게 입안에서의 질감이 확실히 두껍고, 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꿀과 바닐라가 더 앞으로 나온다.
피니시 (Finish)
견과류의 고소함이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 따뜻한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바닐라와 몰트의 달콤한 향이 코끝으로 다시 올라오는데, 이 되돌아오는 향이 꽤 오래 머문다. 자극 없이 편안하게 빠지는 타입이라, 니트로 천천히 마시기에 딱 좋다.
글렌그란트 주요 라인업
메이저스 리저브(NAS), 10년, 12년, 15년, 15년 배치 스트렝스(오늘의 주인공), 18년, 21년 순서로 라인업이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과일 중심의 캐릭터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편.
마치며
글렌피딕 15년 솔레라나 더 글렌리벳 18년처럼 스페이사이드를 대표하는 위스키들과 나란히 놓아도 밀리지 않는 완성도다. 평소 글렌그란트가 너무 가볍다고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배치 스트렝스 버전이 인식을 바꿔줄 수 있다. 글렌알라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처럼 원액의 힘을 온전히 담아낸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이쪽은 그 힘에 우아함까지 얹은 케이스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병. 니트 한 잔이면 충분히 알 수 있다.